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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 이야기

仙道를 발견하다| 선도이야기

한국 사람은 그 사람됨이 서로 양보하여 다투지 않는다.

항상 공손하게 앉아서 서로 범하지 않는다.

서로 존경하고 서로 헐뜯지 않는다.

남이 아픈 것을 보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준다.

  
- 중국 사서에 나타난 한국인의 성품



고대 한국인에게 매우 귀중한 두 가지 미덕이 있었다. 이 두 가지 미덕은 서로 상반되는 성질의 것이다. 하나는 예의 바르고 다투지 않고 양보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고 참지 못하는 성미이여 다른 하나는 불의를 보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정의감이다.


이 두 가지 성미는 오늘의 한국인에게도 조금은 계승되어 있다. 일명 민족성이라고도 하는 한국인의 이 성미는 남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요 남의 나라에서 수입해 온 것도 아니다. 문자 그대로 부조모교父詔母敎(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들에게 가르친 것)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부전자전 모전여전으로 이어받는 인성이었다. 근원적으로 이 미덕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깨우친 것으로 그것이 또 우리 역사와 문화가 되기도 한 정신적인 토양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귀중한 정신적 유산이 있었으니 그것이 선도문화이다. 이 정신적 자산은 오랜 상고시대부터 내려 온 우리의 문화자산으로서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간진하여 온 보물이다.


한국인의 인격은 서당교육이나 서원교육에서보다 가정교육으로 형성된 것이 많았다. 이러한 가정교육 가운데에는 알게 모르게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 있었으니 선도문화였다. 그 출처는 분명치 않았고 어느 책에도 쓰이지 않았고 무슨 과목이라 하여 가르친 일도 없었다. 말하자면 전인교육이었다. 이 부분을 우리의 선도문화가 담당하여 온 것이다.

 

중국인들이 오래 전에 남긴 기록을 보면 그 속에 우리가 몰랐던 수많은 우리의 미덕이 적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읽고 나서 겨우 우리의 정체를 파악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중국인들이 보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의 미덕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한국 안의 평화는 비단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를 추구한 데 그 특징이 있었다. 천지인天地人이 하나가 되는 것, 모두가 일一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니, 이 진리를 어느 누구보다도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는 환인, 환웅, 단군의 가르침 속에서 이미 그 하나를 발견한다.


하나라는 개념은 우리 문화의 밑바닥에 평화사상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 이 화합과 평화의 사상이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도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도문화의 핵심은 홍익인간 이화세계였다. 그리고 효와 충이요 수미균평위首尾坪平位의 정신이었다.

 

홍익은 이익과 다른 뜻을 담고 있다. 오늘의 서구문화는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의 문화지 홍익의 문화가 아니다. 이익과 홍익은 어떻게 다른가. 날카로울 ‘이利’자와 더할 ‘익益’자는 서로 붙어 있어서 한 단어를 구성하고 있지만 둘은 엄청나게 다른 뜻을 갖고 있다. 이는 날카로우나 익은 날카롭지 않다. 이는 더하지 않으나 익은 더할 뿐이다.

  

그래서 이와 익은 오월이 한배에 탄 형상이다. 날카롭지 말고 더하라는 가르침은 선도문화의 핵심이요 우리 한국인의 정신적 기둥인 것이다. 이 같은 정신문화는 2천 년이 지난 뒤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말기에 가서 삼국이 서로 싸우고 헐뜯고 무너지는 과정에서 유·불·도교의 외래 삼교에 의해 흐트러지기 시작하였다.



동국의 선교仙敎라 함은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중국의 도교와
전혀 그 역사와 성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고운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郞碑에서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 왈풍류曰風流
설교지원說敎之源 유군선사備群仙史라 했다.
만일 이 「선사仙史」가 현존했다면
사학사상 일대광채라 할 것이다.
 

- 단재 신채호



우리나라에 우리 고유의 선교문화가 있었다고 처음 말한 근대 역사가는 단재 신채호였다. 선교仙敎란 바로 선도를 말한다. 1910년 3월 11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동국고대선교고」란 단재의 글은 짧지만 매우 중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단재는 우리나라에 불교, 유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 고유의 선교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선교란 여기서 말하는 선도이다. 그는 먼저 단군을 발견하였고 이어 단군의 가르침인 선교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 있어 지리상 발견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유·불·도 등 외래 삼교밖에 몰랐던 당시에 우리 고유의 문화를 발굴한 단재의 머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단재에 따르면 선교는 단군 이래 무려 2천여년이나 계승 발전하여 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였던 것이다.

  

선도문화란 우리나라 고유의 정신문화를 말한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흔히 민족문화라고 하지만 만일 전통문화가 유·불·도 삼교문화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그것을 가지고 떳떳하게 민족문화라 주장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선도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유·불·도 삼교에 정복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삼교가 들어온 뒤에도 선도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명백을 유지하였다.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귀중한 정신적 유산이 있으니 그것이 선도문화이다. 오랜 상고시대부터 내려 온 우리 문화자산으로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간직하여 온 보물이다.

 

선도문화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생활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분명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발췌 : 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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