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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을 뜬 심청이| 선도이야기




‘효’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심청전입니다.
심청전은 조선시대에 쓰인 한글 소설이며 판소리계 소설입니다. 효심 지극한 심청이의
이야기를 선도문화로 풀이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심청이라는 이름을 보면 ‘마음 심心’에 ‘맑을 청淸’입니다. 마음이 맑은 사람, 즉 마
음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신의 눈은 뜨고 삽니다. 하지
만 정말 중요한 마음의 눈을 뜨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많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 마
음의 눈을 뜬 사람을 심청이라고 합니다.


심청이 아버지 이름은 심학규인데 보통 심봉사라고 합니다. 마음의 눈이 닫혀있는 사람
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심청전은 아직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해주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았는데 이것은 희생일 수
도 있지만 하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뜬 사람은 양심을 저버릴 수
가 없습니다. 다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겁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는 사
람은 양심이 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도 어렵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
올 것입니다.


청이가 아주 예쁘고 성실하고 참하다 보니, 어느 부잣집에서 양녀로 들이겠다고 했는데 
청이가 거절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궁여지책이나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 할 때가 있습니다. 근본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당
장에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청이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양녀로 가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근본적
인 해결책이 아니었던 겁니다. 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청이는
그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고통스러운 이별을 하고 떠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얼마나 걱정이 많이 됐겠습니까? 하지만 청이가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기 하나 바쳐서 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녀로 가는 건 아버지의 눈을 뜨
게 하는 해결책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인당수로 갔습니다.


인당수라는 지역이 실제로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람 몸에도 인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양 눈썹 사이에 ‘인당’이라는 혈자리가 있는데 한의학에서는 ‘천목혈’이라고도 합니다. 선도에서는
이곳을 제3의 눈, 영안靈眼, 천목天目이라고 하고 ‘하늘 눈’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당수에 뛰
어들었다는 건 제3의 눈, 즉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면서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안 죽었을 텐데. 난 억울해!’ 하면서 뛰
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아버지의 눈만 뜰 수 있다면!’ 오로지 단 하나의 마음으로 뛰었을 겁니다.

그 마음이 효심입니다. ‘정말 이루어질 수 있다면’이라는 단 하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사람들
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천지를 움직이게 하고 마침내 기적을 만듭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겠
다는 그 일심이 심청이를 다시 지상으로 살아 돌아오게 하고 결국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것입니
다. 진정한 효심은 일심입니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인당수에 뛰어든 게 아닙니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
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희생이 아닙니다. 사랑은 선택이고 확신입니다. 그리고 기적입니다. 사랑의
시작이 바로 효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진짜로 사랑할 줄 알고 도리를 행할 줄 아는 이 시대의 심
청이가 되어 보십시오. 사사로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지혜가 열릴 것입니다.


- 선도문화진흥회 이사장 만월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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